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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

by 아름드리50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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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유적 중 타프롬

나라보다 유명한 유적지 앙코르와트 

캄보디아라는 나라 이름보다 유적지 이름이 더 유명한 앙코르와트. 국기에도 앙코르 유적지가 있고, 맥주도 앙코르 맥주요, 지폐에도 있다. 앙코르의 유적지들은 1860년 경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에 의해 알려졌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에게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오래된 폐허였을것이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커다란 돌을 주워다 집이나 도로를 지었고, 왕족의 목욕탕에선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빨래도 했을 것이다. 발견 후 여러 학자들이 그 기원을 연구했지만, 당시 학자들은 크메르인들의 조상이 유적의 주인공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정교하고 훌륭했기 때문이다. 18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프랑스 고고학계는 크메르 왕국이 앙코르 유적을 건설했음을 밝혀냈지만 몇 십 년 후엔 다시 관심을 잃고 20세기까지 밀림 속에 방치, 흡수되었다. 근현대사의 힘든 역사를 거치고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은 앙코르와트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찾는 밀림 속 유적지가 되었지만, 유적들 옆에는 이끼 쌓인 석조물과 돌들이 맞추지 못한 퍼즐처럼  쌓여있다.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기 전에 

9세기 말 시작된 크메르 왕국은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전성기였다. 15세기 중반까지 600년이 넘도록 존재했었고 국력이 가장 정점에 달했을때는 자야바르만 7세로, 중국의 윈난성, 미얀마, 베트남과 국경을 맞댄 강대국이었다. 학자들은 동로마 제국보다 컸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당시 크메르 왕국의 수도였던 앙코르에는 앙코르와트를 포함해 바욘, 앙코르 톰 등 여러 건축물을 지었으며, 황금과 희귀한 동식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앙코르 일대 외에도 밀림 곳곳에 건축시기와 양식이 조금씩 다른 크메르 왕국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밀림을 헤치고 나아가 유적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이 크겠지만 곳곳에 흩어진 이 많은 유적을 다 찾아보려면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유적이 몰려있는 앙코르와트 일대를 둘러보지만, 모든 유적을 다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출발 전에 관심있는 유적지를 체크하고 동선을 확인해 그에 따른 입장권(1일, 3일, 7일권)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앙코르의 유적들은 힌두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힌두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앙코르 유적지 투어 Best를 꼽아보자 

앙코르 유적지는 많고 다양하며 밀림 곳곳에 흩어져 있어 모두 다 돌아보기는 힘들다.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곳, 보존 상태가 좋은 곳들을 위주로 돌아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앙코르 유적의 최고봉은 단연 앙코르와트다. 지금은 불교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한두교의 신인 비슈누에게 바친 사원이다. 크메르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며 규모면에서도 압도적이다. 무성한 밀림 속에서 발견되어 그 신비로움이 한층 배가되었다. 해자가 둘러싼 앙코르와트의 3층에는 65m높이의 중앙탑을 네개의 탑이 둘러 싸고 있는데 이는 메루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십자형의 구조이며, 역사적인 내용과 힌두 신화를 소재로 한 부조가 가득한 회랑이 둘러 싸고 있다. 사원의 곳곳에는 양감이 풍성한 조각들도 많은데 그 많은 조각상들이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엎드리다시피 해서 3층에 올라갈 수 있는데 전에는 승려와 왕만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 만큼이나 유명한 곳이 바이욘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국교를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꾸면서 기존의 힌두 사원을 증축해 바이욘을 불교 사원으로 재탄생시켰다. 바이욘은 다른 건축물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미소짓는 얼굴상이다. 얼굴 상의 주인공이 누구냐에 의견이 많았지만 힌두교의 여러신을 표현했다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온전한 얼굴상은 117개에 달하며 '크메르의 미소'로 불린다. 바이욘은 크메르를 방문했던 원나라 사진 주달관의 기록에 의하면 금빛 사원이었다고 한다.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이자 나무가 유적을 휘감아 버린 모습으로 유명한 곳이 따프롬 사원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설립한 불교 사원인데 본래 모습을 유추하기 힘들 정도로 훼손이 심한 편이다. 하지만 나무 줄기와 뿌리가 유적을 감싼 기괴한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니 방문 리스트에 넣도록. 그 외에 유적지를 오가면서 통과하는 얼굴이 새겨진 문, 코끼리 테라스를 지나기도 한다. 일정이 허락한다면 저녁 노을 명소인 프놈바켕에 올라보기도 하고, 왕족의 목욕탕으로 사용되었다는 스라스랑의 한가함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앙코르 유적과 조금 떨어져있는 반띠아이쓰레이는 조각이 더 정교하고 양감을 더 많이 주어 앙코르 유적보다 화려해 멀리 가는 수고를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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